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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혁 금융·보안칼럼-15] (광복절 특집)보안과 안보, 최대 적은 유출과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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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혁 금융·보안칼럼-15] (광복절 특집)보안과 안보, 최대 적은 유출과 배신
  • 길민권 기자
  • 승인 2019.08.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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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늘 우리 안에 있었다“
영화 '밀정' 포스터
영화 '밀정' 포스터

의열단장 김원봉은 일본고등부 경찰 황옥에게 묻는다. “동지는 어느 역사 위에 이름을 올리겠습니까?” 일제와 내통하는 자는 척살해야 할 대상이었지만 그에게도 조국이 있고 마음의 빚이 있다고 여긴다. 영화 ‘밀정’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100년 전 우리의 비폭력 3·1운동은 일제의 잔악한 무력 앞에 허망하게 무너진다. 청년들은 국제 여론에 알리고자 강대국으로 숨어들고 독립자금을 보태고자 일자리 찾아 망망대해를 건넌다.

일제의 잔혹한 만행에 참다 못한 민중은 일본군 수뇌부와 반민족 친일파에 대한 무장투쟁을 본격화한다. 1919년 11월 만주 길림성에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13명이 주축이 되어 의열단을 만든다. 무장투쟁만이 조국의 독립을 가져온다는 신념으로 뭉친 의열단에는 단재 신채호, 백범 김구, 우사 김규식도 참여하여 힘을 보탠다. 신흥무관학교는 대한 군인, 애국지사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하였다.

10대에 걸쳐 정승, 판서를 배출한 백사 이항복의 후손인 우당 이회영 선생은 당대 최고의 재산가이자 명문집안이다. 현재 자산 가치 600억 원에 이르는 전 재산을 처분하고 50여명의 가족들과 혹한이 몰아치는 만주로 떠난다. 급히 처분한 재산은 청산리 전투와 의열단 주역들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 건립에 쓰인다. 하루에 한 끼도 겨우 해결하면서 20년 넘도록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6형제 중 5형제가 중국에서 순국한다.

그무렵 이완용은 친일의 대가로 약 6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축적한다. 고종을 협박하여 을사조약 체결을 주도하고 내각총리대신과 일본 귀족 지위를 얻는다. 순종을 즉위시키고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다. 만 16세 유관순은 독립선언서를 품에 안고 고향으로 돌아와 만세운동을 주도한다. “시위를 한다고 바뀔 것 같더냐? 우리 천황폐하는 그럴 분이 아니다. 우리는 힘이 없으니 일본의 덕을 보는 게 맞다. 가만히 맡은 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라 그것이 조선을 위한 길이다” 이완용은 매일신보에 3·1운동에 대한 비판과 경고문을 게시하여 일본으로부터 후작에 오르고 아들 역시 남작의 지위를 받으며 신분이 급상승한다.

독립군 양성의 중심이 된 항일비밀결사 의열단은 일본의 착취와 그들과 결탁한 친일파를 제거 대상으로 삼았다. 선량한 우리 민족을 무참하게 고문하던 종로경찰서, 부산경찰서와 조선총독부에 폭탄이 투척된다. 반면에 밀양·진영 폭탄반입, 상해 암살계획, 동경 황궁파괴는 사전에 유출되어 많은 희생을 치른다. 의열단의 2차 대규모 거사계획으로 상해에서 제조한 폭탄은 대륙의 철로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로 반입하는데 성공한다. 일본 경찰과 독립군의 밀정들은 서로의 신분과 속내를 감추면서 회유하고 교란하는 암투를 벌인다. 적인지 동지인지 구분 못하는 촉박한 상황에서 폭탄을 실은 열차는 국경을 넘어 경성으로 향한다.

의열단장 김원봉
의열단장 김원봉

이 무렵 몽골에서 온 조선인 이태준도 의열단의 의거를 돕는다. 울란바토르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이태준은 독립운동자금을 중국으로 운송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친일파에 매수된 의열단원이 일본경찰에 유출됨으로써 폭탄과 선언서 모두 압수당하고 서울에 도착한 의열단원은 사살되거나 체포된다.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태준은 서울로 상경해 세브란스병원 앞 ‘김형제상회’에서 일을 시작한다. 세브란스의학교 1회 졸업생인 김필순이 운영하던 이곳은 독립지사들의 비밀 아지트였다. 김필순은 황해도 장연에서 출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면허의사이다. 그는 무장세력 양성과 군자금 확보를 위해 신민회를 조직한다. 무장투쟁 기회와 독립의 열망을 키우기 위해 독립운동 캠프에 적극 동참한다.

신민회는 1907년 안창호, 신채호와 함께 만든 비밀결사 조직으로 항일 민중운동을 전개해 나간다. 안창호는 평남 강서 출신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야학을 개설하고 재미 한국인의 교육과 의식계몽에 힘을 썼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 체결 소식을 접하고 구국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귀국한다. 또한 1909년 민족계몽운동과 지도자 양성을 위해 청년학우회를 조직한다. 이태준은 안창호의 권유로 청년학우회에 가입하고 김필순과의 인연으로 신민회에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이어간다.

같은 해 10월 황해도 해주 출신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한다. 대대적인 검거작전으로 일제에 체포되지만 이듬해 중국으로 피신하고 시베리아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다. 그 무렵 일제는 총독 암살 모의를 조작해 ‘105인사건’으로 날조하여 신민회를 해체하고 항일 기독교인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김필순도 지명수배를 피해 경의선 열차에 몸을 싣고 이태준도 몽골로 향한다. 총칼과 탄압, 조작, 추적, 체포, 투옥을 일삼는 일본 경찰로부터 벗어나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지만 그들의 항일투쟁과 대한독립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이태준이 울란바토르에 설립한 ‘동의의국’은 항일운동에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의 병원이라는 의미이다. 당시에 몽골에 퍼진 전염병을 치료해주고 마지막 황제 ‘보그드 칸’의 어의로 명성과 부를 얻었지만 그는 한시도 조국의 독립을 외면하지 않았다. 의사로서 편한 삶의 길을 버리고 의술로 벌어들인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 자금으로 운송하고 피신해 오는 항일독립지사들을 위해 집과 병원을 안식처로 내주었다.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한 이태준은 열악한 폭탄 제조기술을 개선하기 위해 헝가리 폭탄제조 기술자를 소개한다. 또한 폭압적이고 착취적인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을 알리고자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는 김규식에게 자금을 지원한다. 하지만 병원 운영과 독립자금 마련 그리고 의열단과의 약속을 다하기 위해 돌아간 몽골에서 러시아 백위파 부대에 의해 총살형을 당한다. 위험을 알고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닉해둔 독립군 자금과 금괴를 보존하려다 참변을 당한다. 38세 젊은 나이에 타국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김필순도 일본의 끈질긴 추적에도 불구하고 만주에서 병원을 운영해 모은 수익금 전부를 독립군의 군자금으로 기부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일본인 밀정에 의해 독살로 영면하게 된다.

김규식은 파리에서 3·1운동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와 통신국을 개설하여 회보를 배포한다.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김규식의 부친은 부산항에서 벌어지는 일제의 불평등 무역을 알리고자 상소를 올렸다가 오히려 귀양을 가고 모친마저 충격으로 세상을 떠난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김규식은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 집에 입양되면서 서양식 근대 교육을 받는다. 이후 독립신문에 입사하고 독립협회에도 가입한 후 미국 유학을 떠난다. 귀국 후 위축된 독립운동을 살리기 위해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과 단결을 위해 임시정부 수립을 제의한다.

안창호 또한 정통성을 가진 민족정권과 통일된 독립운동을 위해 임시정부 통합 운동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당시 투쟁 노선과 운동 방향이 다른 조직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상을 초월해 전 민족계가 민족국가 건설에 동참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상해에서 일본 경찰에 압송되어 서대문감옥과 대전감옥에 수감되고 또다시 ‘동우회사건’으로 형무소에 투옥되어 병으로 사망한다.

1932년 1월 동경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왕 히로히토 마차에 수류탄이 터진다. 비록 목표 달성은 못했지만 일본 제국주의가 신격화한 일왕을 대상으로 적의 심장부에 타격을 가한다. 서울에서 태어난 이봉창은 일하는 곳마다 일본인으로부터 굴욕적인 수모를 참아낸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 처단을 보고 어린 가슴에 촛불 하나를 켜두었다. 적을 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잡역과 날품팔이를 하면서 일본어를 익혀 나간다. 31세 이봉창은 동경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으로 조국의 곁을 떠나간다.

같은 해 4월 상해 홍커우 공원에 충남 예산을 떠나온 청년이 일왕 생일 행사에 일장기를 들고 입장한다. 공원 전체에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순간 투척된 폭탄은 사령관, 대장, 단장 등 주요 적장들의 목숨을 끊어버린다. 자결용 폭탄은 터지지 않아 일본군화에 짓이겨지면서도 윤봉길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12월 혹독한 추위 속에 얼어버린 시신은 쓰레기 하치장에 매장된다. 미래의 모든 꿈과 삶을 접고 오직 하나 대한독립을 위해 산화한 그의 나이 31세이다.

청산리대첩 승리 기념사진
청산리대첩 승리 기념사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김좌진은 안창호와 서북학회, 청년학우회 설립에 기여하고 광복단에 가담하면서 격렬한 항일투쟁의 선봉에 선다. 일본군 부대가 독립군 토벌을 위해 만주로 출병하자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으로 청산리대첩을 기적 같은 승리로 이끈다. 일본군의 격렬한 보복작전에도 사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간부 양성에 주력한다. 만주의 퍼져있는 단체와 군단 통합에 힘을 쏟고 단일 결성을 호소하다가 동족의 흉탄에 맞아 순국한다. 중국과 연합으로 일본군을 격퇴한 양세봉 조선혁명군 총사령관도 일본 경찰 밀정의 계략에 빠져 일본군에 포위되어 전투 끝에 전사한다. 일제 강점기 활활 타오른 던 독립운동가와 투사들의 등 뒤에서 총을 겨눈 건 친일파 밀정들이었다. 대한 독립운동의 지도자 주변에는 늘 밀정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배신과 모략, 내부정보 유출은 그 결과가 얼마나 처참하고 충격적인지 처절히 실감한다.

항일 독립운동을 향한 불타는 의지로 뭉친 김원봉과 이태준은 아픈 역사가 만들어낸 그 시대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비운의 인물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조국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의열단 그리고 유관순,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장렬한 죽음은 통한의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사대부 명문가로 일본의 노예가 되어 호의호식 할 바에는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자던 이회영 형제들은 현 시대 지도층이 보여줘야 할 양심을 행동으로 실천하였다. 행동하지 않은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울림도 흔들리지 않는다. 안창호 선생과 김좌진 장군이 호소한 민족통합과 단합된 항일운동에 대한 간절함은 오늘도 절절하다. 100년전 뜨거운 함성은 지금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아픈 역사를 자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일제의 만행과 반성 없는 이웃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 지역주의와 학벌, 남녀노소, 이념이나 정략 없이 한 마음으로 독립을, 한 몸으로 항일 투쟁에 나선 선열들을 위해서라도 그 역사 가슴에 새기고 잊지 않아야 한다.

매일 반복되는 유사한 포맷의 연예 프로그램과 아이돌 기획 프로그램이 차지해버린 미디어에 역사와 시사 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 한다. 파렴치한 경제제국의 실상과 역사 바로 알기를 통해 정보통신기술에 강한 우리 밀레니엄 세대들이 디지털경제로 일본열도를 잠재워야 한다. 다가올 변화가 두려운가. 전혀 두려워하지도 물러서지 않았던 우리 민족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나라를 위해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의사의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 중에서)

“을사조약을 체결해 나라의 외교권을 넘기고 통감부를 설치하게 한 죄”
“정미7조약을 체결해 군대를 강제로 해산한 죄”
“한일병합을 추진한 죄”
“무엇보다 큰 죄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은 죄”
(이재명 의사가 이완용의 죄목을 알리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나는 비로소 당신이 탁견과 용기를 갖춘 비범함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이완용을 극찬하면서)

“3·1운동은 불손한 세력에 선동에 의해 일어난 몰지각한 행위이며 대부분의 귀족들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조선의 독립은 허망한 것입니다”
(이완용이 일본총독에게 독립운동 진압방안을 제시하면서)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출 안 해도 750만 한국 관광객이 와서 먹어 준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식민지 시절 키워 놓은 친일파의 득세와 영향력으로 대한민국 국론이 분열되고 광화문 광장에 둘로 쪼개진 외침은 아베의 밀정스러움이다.

척박한 시대에 태어나 목숨을 걸고 싸우다 산화해버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중 역사 속 어디에도 제대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 애석한 이들이 많다. 영화 ‘밀정’에서 의열단장은 우리에게 묻는다. 역사의 시간을 멈추게 할 것인가, 흐르게 할 것인가.

필자. 김정혁 링카코리아 대표
필자. 김정혁 링카코리아 대표

※필자. 김정혁 금융·보안전문 칼럼리스트

△링카코리아 대표 △지란지교시큐리티 기술고문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겸 자율규제위원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블록체인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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