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5 02:35 (월)
영업비밀침해 소송, 이기는 방법은
상태바
영업비밀침해 소송, 이기는 방법은
  • 우진영 기자
  • 승인 2023.04.21 17: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무법인 에이앤랩 신상민 변호사

#A씨는 국내 반도체 업체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외국계 반도체 업체의 설계파트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같은 업계이긴 하나 경쟁사가 아닐뿐더러, 하는 일도 전혀 달랐기 때문에 비밀유지서약서(NDA)를 위반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직한 지 3개월 정도 지난 뒤, 직전 회사에서 A씨와 회사로 영업비밀침해금지 가처분 및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는 ‘자사의 영업비밀인 반도체 xx의 제조방법의 사용중단 및 침해금지’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A씨는 도대체 침해를 중단하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그 범위가 어떠한지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이에 법적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A씨는 변호사를 찾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게 되었다.

실무에서 위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 침해금지소송이나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명확히 특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영업비밀의 경우 특허나 상표권과는 달리 별도의 등록 내지 공시 제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소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영업비밀을 보유한 사람이 스스로 권리범위를 주장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원고들은 영업비밀침해 서면에 ‘**제조방법’, ‘**분산방법’, ‘**추출방법’ 등으로 뭉뚱그려서 청구한다. 이때 소장을 받아본 일반인 입장에서는 소장에 기재된 청구항목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법적인 대응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보통 원고들은 재판과정에서 영업비밀을 자세히 공개하게 되면 그 본질인 비밀성을 상실하게 되어 오히려 영업비밀로서 보호받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으로 영업비밀의 특정을 꺼리게 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기업 내부에 비밀로 존재하는 영업비밀의 본질적 성격에 비추어 그 특정의 정도를 완화하여 봐주는 경우도 존재하므로, 어설프게 대응했다가는 오히려 상대 주장의 영업비밀을 더 구체화해 주는 잘못된 방향으로 변론을 하게 될 우려도 있다.

따라서 영업비밀 침해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소장을 받은 경우, 상대가 주장하는 영업비밀이 소송실무상 인정되는 수준의 특정성을 갖췄는지에 관해 전문적인 검토를 거친 후, 소송에 대응을 하여야 한다.

영업비밀침해금지 청구시에는 법원의 심리와 상대방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도록 그 비밀성을 잃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영업비밀을 특정해야 한다. 불분명하다고 판단되면, 영업비밀 특정에 관한 전문적인 법리를 바탕으로 ‘문제된 영업비밀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항변을 하여야 한다.

이런 경우 법원으로부터 영업비밀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건을 기각시킬 수 있다.

실제 영업비밀 불특정을 이유로 원심에서 기각 판결, 이후 항고, 재항고에서도 기각된 가처분 이의 사건이 있다(대법원 2011마1624).

이 사건 신청인(채권자)은 자신이 판매하는 제품(염료)의 배합비율, 제조방법, 분산방법, 배합방법 등이 영업비밀이라 주장하며 피신청인(퇴사자)을 상대로 영업비밀침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그러나 원심은 물론이고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은 채권자의 영업비밀 특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 가처분 이의 사건의 항고와 재항고를 모두 기각했다. 법원은 신청인의 영업비밀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는데, 피신청인 측에서 영업비밀 불특정 항변을 효과적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신청인은 영업비밀 목록에 기재된 기술정보를 ‘**방법’ 등의 단어로만 기재하며 구체적인 방법을 밝히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명자료 등을 일체 제출하지 않았다. 다만 해당 자료가 회사 내에서 수치자료, 업무매뉴얼 등의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보관되고 있다는 주장만 서면을 통해 펼쳤을 뿐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신청인의 주장과 소명만으로는 이 사건 정보의 보유자가 그 정보의 사용을 통해 경쟁자에 대해 경쟁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거나 그 정보의 취득이나 개발을 위해 상당한 비용이나 노력이 필요하다거나 이 사건 정보가 공지된 정보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특정이 됐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서울고등법원 2011. 8. 1. 자 2010라384 결정).

대법원 역시 피신청인들이 이 사건 정보가 일반적, 개괄적, 추상적으로 기재되어 있어 공지된 정보와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주장함에도, 신청인이 공지된 정보와 차별화되도록 이 사건 정보를 더욱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주장, 소명하지 아니함으로써, 법원은 이 사건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수 없고 피신청인들도 영업비밀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어 적절한 방어행위를 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에서 영업비밀은 제대로 특정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신청인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만일 피신청인이 영업비밀 불특정에 대해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 채 방어를 했다면,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영업비밀의 보유자가 퇴사자를 상대로 영업비밀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침해행위에 해당함을 판단하기에 앞서서, 영업비밀 자체가 인정되는지 선행적으로 검토가 필요하다. 각 사안의 특이성에 따라 영업비밀 특정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영업비밀 전문변호사의 도움을 얻어 판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