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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혁-보안 칼럼⑦] 보안사고는 정보 잃지만 안전사고는 생명 잃어

탁상공론 규제와 실효성 없는 안전점검으로는 현장에서 변화는 없다

길민권 기자 mkgil@dailysecu.com 2017년 12월 27일 수요일

▲ 영화 '타워'의 한 장면.
▲ 영화 '타워'의 한 장면.

“뭔 일 생기겠어요?”
“방화벽이 사람 살리려고 만든 건데 사람을 죽이네”

6년전 크리스마스에 개봉한 영화 ‘타워’에서 나오는 대사다.

첫 번째 대사는 설마 오늘 화재가 발생하겠냐는 안전 불감증이고 두 번째 대사는 인명구조 보다는 빌딩의 존립이 우선인 탐욕이다. 108층 초고층 주상복합 스카이타워는 부의 상징이자 모든 호화로운 시설이 갖춰진 랜드마크이다. 타워를 건립한 건물주와 사장, 그들에게 초대된 권력자와 고위층, 분양 당첨자들은 세상을 내려 깔볼 수 있는 고층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기다린다. 조리실 화재에 반응하지 않은 스프링쿨러의 결함을 알고서도 설마 오늘 무슨 일 생기겠냐고 덮어버린다. 기후변화로 고층에 상승기류 예상되어 헬기 이륙이 취소된다. 하지만 사장은 서울청장에 직접 통화해 특별히 배려해준 헬기를 얻어낸다. 이렇게 덮어버린 소방설비와 무리하게 강행한 과시용 이벤트는 결국 돌풍에 휩쓸린 헬기가 빌딩과 충돌해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성실히 살아가는 소박한 시민들 보다 고위층의 안위가 우선이었던 지휘통제시스템은 결국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낸다. 힘든 관문을 뚫고 꿈을 이룬 초고층 빌딩은 어쩌면 인간의 허황된 욕심의 산물일수도 있다. 권력의 비호와 관계당국의 눈가림 그리고 담당 공무원의 잇속 챙기기는 스카이타워 크기만큼이나 높았다. 화재시 작동해야 할 소방시설의 절대적 가치를 절감하면서도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먹이사슬은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이다.

지금으로부터 46년전 크리스마스 오전 충무로 한복판에서 최악의 화재가 발생한다. 서울의 모든 소방차가 출동하고 경찰과 군대는 물론 주한미군의 소방차와 헬리콥터까지 투입해도 구조 활동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연각 호텔 2층 커피숍 프로판 가스통이 터지면서 발생한 불은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집어 삼키며 16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성탄절을 보내던 투숙객들이 유독가스와 열기를 참지 못하고 창밖으로 뛰어내린 이유는 비상구와 피난계단이 유사시 기능을 못한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 1971년 12월 25일 대연각 화재 보도. 경향신문.
▲ 1971년 12월 25일 대연각 화재 보도. 경향신문.

기억하고 싶지 않은 1999년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는 잠자고 있던 유치원생을 포함해 23명의 생명을 빼앗아 갔다. 수많은 컨테이너를 불법으로 개조해 객실을 만든 무허가 구조물은 인허가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비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유가족들이 받은 보상비로 아이들의 안전한 세상을 바라는 뜻으로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설립한다. 하지만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과 철저한 관리감독 다짐을 비웃기라도한듯 몇 달 지나 또다시 대형 참사가 발생한다. 인천의 한 호프집은 손님 대부분이 고교생으로 빼곡했다. 지하노래방 내부수리중 시작된 불길은 비좁은 계단을 타고 건물 전체를 태울 기세였지만 정작 호프집은 비상구도 소화시설도 없는 침묵의 살인자였다. 유일하게 존재한건 학생들의 안전한 대피보다 어른들이 판매한 술값 계산이 골든타임을 가로막고 있었다. 영업정지 명령에도 대놓고 무허가 영업을 이어가고 소방점검이 정상 판정을 받았던 이유는 호프집 소유주의 정기적인 뇌물 상납이었다. 비리와 불법으로 빚어진 기만에 살찐 기성세대의 막장드라마는 호기심 많은 10대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참혹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 씨랜드 화재희생 어린이 18주기 추모제.
▲ 씨랜드 화재희생 어린이 18주기 추모제.

공무원의 부정부패와 사업장의 안전 불감증은 꽃다운 56명의 청소년들을 생지옥으로 몰아넣었다. 평화롭고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를 이 세상 가장 슬픈 성탄절로 맞이한 제천 화재 또한 기본적인 안전대책이 지켜지지 않았다. 불법 증축으로 대피공간을 제공해야 할 옥상이 사라졌고 유일한 탈출경로인 비상구는 사우나용품 가득한 수납장이 가로막고 있었다. 비상벨도 출입문 자동버튼도 무용지물이고 대피경로와 건물내부를 잘 아는 직원도 없었다. 불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 생명부터 살려야 한다. 일선 현장에서의 소방점검은 유사시 재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장치다. 이러한 점검이 육안으로 세밀하게 파악하고 실제 작동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유사시 탈출 경로와 대피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시정조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

공공장소나 대형 건물에는 화재 발생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불연재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다. 시설과 건물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생명이 우선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영화 ‘타워’에서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나부터 살겠다는 마음,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들이 유독가스 가득한 우리 사회를 대변해주고 있다. 여유롭고 즐거운 파티가 불길에 의해 순식간에 참혹한 상황으로 바뀔 때 각종 소방시설에 의존하기 보다는 평소 안전대책과 대피훈련을 전담하는 안전관리자의 사명감이 더욱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도 최고의 보안책임자로 추모하고 있는 릭 레스콜라(Rick Rescola)의 존재가치는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더욱 절실하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군에 입대한 베트남 참전용사였던 그는 퇴역 후 1985년부터 모건스탠리의 안전관리 요원으로 근무한다. 1988년 팬암 비행기 폭발사고가 발생하자 세계무역센터의 테러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보안시스템 구축비용 문제로 반영되지 못한다. 5년 후 실제로 세계무역센터는 테러리스트에의해 지하 폭발사고로 이어진다. 모건스탠리 사무실을 뉴저지로 이전할 것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에 레스콜라는 정부의 재난대응 체계를 믿지 못하고 자체적인 비상계획을 수립한다. 업무연속성계획 마련은 물론 실제 대피훈련을 수행하면서 잠재적인 위험분석과 위기관리 능력을 다듬어 간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고위간부와 트레이딩 직원들의 불만과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업무시간 중에도 비상훈련을 진행해 나간다. 외부 방문객들도 사전에 안전교육을 이수하고 일을 보도록 철저하게 지켜 나간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빌딩은 납치된 비행기에 의한 테러로 불길에 휩싸인다. 44층과 73층 사이에 위치한 모건스탠리 2700여명의 직원과 방문객 250명은 정부와 건물의 안내방송이 아닌 레스콜라의 지시에 의해 건물 밖으로 무사히 탈출한다. 평소 반복적인 대피훈련에 의해 대피경로를 인지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보안책임자의 사명감이었다.

▲ 뉴욕 9.11 테러 현장
▲ 뉴욕 9.11 테러 현장

“인간이 재난으로 충격에 휩싸일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뇌를 움직이는 최고의 방법은 훈련이다. 똑같은 훈련을 반복하는 것뿐”이라는 신념은 안전한 대피와 질서유지 그리고 소중한 생명들을 지켜냈다. 정부의 대응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위기에 처한 타인의 생명도 구조할 수 있는 시간을 벌수 있었다. 화재안전기준은 매년 새로 제정되고 개정되면서 정작 현장에서는 기준에 대한 이행점검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소방안전점검도 현행법상 건물주가 외부 전문업체에 맡기지 않고 자체점검을 해도 문제가 없다. 외부 전문업체 또한 퇴임한 관계당국자로 느슨하기 짝이 없다. 안전점검 보고서도 담당자가 많은 시간을 들여 점검을 하지 않고 형식적인 기록에만 치우친다. 옆에 있는 사람도 못 믿는 세상인데 기계나 설비는 매번 의심하고 찔러봐야 한다. 지금의 화재안전기준과 산업안전 관련 법안이 만들어진 시초는 1919년 뉴욕이다. 1911년 3월 발생한 맨하튼의 대형 섬유공장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Triangle Shirtwaist) 화재 사건은 미국 전역에 충격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가져왔다. 자유의 땅이자 기회의 땅인 뉴욕에서 이민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도 아메리칸드림을 일궈내고 있었다. 하지만 작업 중 발생한 불길에 공장주는 비상구를 개방하지 않은 채 키를 들고 먼저 탈출한다. 평소에도 도난방지를 위해 잠가둔 비상구는 유사시 대피로가 되지 못하고 불타는 생지옥으로 가는 문이었다. 대부분 10대와 20대 여성 노동자들은 부서진 피난계단에다 비상구도 막힌 채 9층에서 몸을 던졌다. 146명의 꽃다운 소녀들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 시민들은 장례행렬에 동참한다.

광화문 집회처럼 운집한 군중들은 공공안전에 관한 시민위원회를 만들고 조사위원회 결성을 위한 법률을 발의한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 무대가 있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광장에서는 노동조건 개선과 화재안전 기준은 물론 산업안전에 대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뉴욕에서 시작된 시민행동과 법률안 제정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된다. 또한 공공안전에 관한 규칙을 정하는 행정위원회가 설치되어 노동개혁과 노동법의 현대화를 이끌어낸다. 화재안전 관련 비상구, 방화벽, 소화기, 경보시스템, 자동 스프링쿨러 설치 등 기본적인 개선조치도 시행된다. 이 법안들은 노동자가 고용주의 책임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던 관습을 깨고 무과실 책임주의 원칙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무과실 책임주의는 세계 각국이 도입한 산업재해보상법과 사회보장법의 토대가 되었다. 2014년 69명의 사상자를 낸 고양터미널 화재는 가스관 밸브를 실수로 밟아 가스 누출의 원인이 되었고 2015년 140여명의 사상자를 낸 의정부 화재는 건물간 간격이 비좁고 값싼 단열재인 드라이비트 외장재가 화근이었다. 2008년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냉동물류센터 화재는 일용직 작업자들의 안전교육 부재와 현장관리 소홀, 빨리빨리 공사일정이었다고 하지만 공사중 오작동 우려로 스프링쿨러와 경보장치, 방화문을 꺼버린 인재였다. 대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는 부실공사에다 기준치를 넘어선 눈이 쌓였음에도 500명이 넘는 학생을 안전대책 없이 입장시킨 결과였다. 무허가로 지어진 담양 펜션 바비큐장 화재는 우리 모두가 안전대책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얼마나 무분별한지 여전히 잠재적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초등학생들도 개인정보를 소중히 다루는 디지털 정보보안시대에 이제 더욱 관심을 가질 건 안전교육이다. 성적우열과 대학경쟁, 취업전쟁에 내몰린 미래 주역들이 본인의 안전조차 지키지도 못하면서 남을 돕는 건 9시뉴스감이다. 모든 어린이가 안전한 세상에서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안전교육을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건물과 시설이 허가받고 준공된 이후에는 안전시설과 소방시설이 그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행정과 안전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고 공무원이 증원되어도 여전히 인재로 인한 대형사고가 반복되는 건 책임감 높은 안전전문가 양성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 허드슨강 여객기 불시착 이미지
▲ 허드슨강 여객기 불시착 후 승객 구조장면

2009년 뉴욕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US에어웨이즈 여객기는 탑승객 전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륙 직후 새떼와의 충돌로 양쪽 날개 엔진 모두에 불이 붙어 정상 비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장은 “My aircraft”라고 선언하고 부기장은 “Your aircraft”라고 답한다. 승객과 승무원이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하는 순간 기장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결연한 의지이다. 미국의 재난대응시스템은 철저하게 현장지휘권 체계이다. “재난 발생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지휘를 맡는다”는 원칙이다. 특히 뉴욕주는 트라이앵글 화재 사건 이후 세계 최고의 재난대응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우리처럼 중앙정부에 보고할 문서를 작성하거나 몇 시간 지체하면서까지 지시를 기다리지 않는다.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상황에서 윗선보고와 구조방안을 지시받으며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않는다. 뉴욕주의 산하기관들은 스스로 컨트롤타워가 되어 본인의 업무를 신속하게 대응한다. 엔진 화재 이후 2분 만에 뉴욕재난관리국을 포함해 항만청, 경찰국, 소방국, 비상의료팀, 해안경비대 등 8개 기관이 긴급 출동한다. 마지막 승객까지 구조에 걸린 25분 이후 비행기는 강 아래로 침몰한다. 소방구조대장은 자체 구조선이 부족하자 민간선박에 구조대원을 탑승시켜 가장 먼저 도착해 구조활동을 시작한다. 유일한 부상자인 승무원이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100명 가까운 의사가 대기하고 있을 정도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부모님을 애타게 부르짖으며 어두운 심해로 침몰해 버린지 24시간이 지나도 골든타임이라며 방송을 장악해버린 국가 컨트롤타워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영하 6도가 넘는 차가운 강물에 가라앉는 비행기에서 승객을 최우선으로 구조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탈출한 셀런버거 기장 혼자 영웅이 아니었다. 위험에 처한 극한 상황에서 각자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 구조대원과 지켜만 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구조활동을 하고 사라진 시민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래도 승객과 승무원수를 파악하고 혹시라도 남은 사람이 있는지 수색하는 캡틴을 가진 뉴욕은 모든 걸 가졌다.

▲ (좌)조종사 체슬리 셀런버거. (우) 보안책임자 릭 레스콜라.
▲ (좌)조종사 체슬리 셀런버거. (우) 보안책임자 릭 레스콜라.

레스콜라와 셀런버거의 공통적인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신념이 우리 사회에 잔잔한 한강물처럼 스며들어 기적 같은 안전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보안은 컴퓨터와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를 보호하고 정보유출을 차단하지만 안전은 소중한 우리 가족과 이웃의 생명지킴이다. 둘 중 “뭣이 중헌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의례적인 재난대책이나 사후적인 처벌로는 반복되는 참사를 막을 수 없다. 탁상공론 규제와 실효성 없는 안전점검으로는 현장에서 변화는 없다.

안전전문가를 양성하고 안전교육을 확대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과 시설에는 안전등급을 공개해야 한다. 대형 빌딩마다 대피경로와 대피절차를 마련하고 불시에 대피훈련을 정기적으로 반복해야 한다. 업무상 편의상 실시하는 도상훈련과 일부만 참여하는 약식훈련은 실제 재난 발생시 무용지물이다. 안전관리자와 보안책임자는 모든 재난과 재해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마련하고 무모할 정도로 상황훈련을 추진해야 한다. 당장의 불편함과 약간의 지루함은 훗날 유사시 스스로를 지키고 가족과 이웃을 살리는 보물함이 될 것이다. 재해재난은 예고편 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위기관리계획과 비상계획이 실지화되어야 하고 훈련계획도 현실적으로 수행해 나가야 한다. 계획에 없던 사고도 대비해야 한다.

”계획에 실패하면, 실패를 계획한 것이다.”

▲ 김정혁. 보안전문 객원기자. 보안칼럼리스트
▲ 김정혁. 보안전문 객원기자. 보안칼럼리스트
※필자. 김정혁 데일리시큐 금융전문 객원기자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대우증권,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한국은행을 거쳐 현재 진앤현시큐리티 전무, 한패스 감사,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 등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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